"와리지 말앙 구경행 갑서"…80만년 전, 제주의 속살을 엿보다

입력 2015-08-17 07:00  

제주의 신비를 찾아서…시간여행 떠나보자

'제주의 허파' 곶자왈, 때묻지 않은 자연의 원형
유배 온 文人들도 반해버린 용머리 해안 풍경
군산오름 정상에 서면 서귀포가 한눈에



[ 최병일 기자 ]
몇 번을 둘러봐도 지겹지 않은 곳이 있다. 수없이 많은 여행을 다닌 사람도 “여행의 끝은 제주”라고 입을 모은다. 어느 계절, 어떤 테마로 가도 좋지만 제주가 어떻게 생성됐는지를 체험하는 여행도 의미가 깊다. 제주는 화산이 만들어놓은 풍경의 연속이다. 오름은 화산이 기지개한 것이고, 오름 중의 최고봉인 한라산은 화산이 용트림하며 만든 절정의 작품이다. 화산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희귀 생물의 보고인 곶자왈은 용암이 만들어낸 지형이고, 용머리 해변은 용암이 바다로 흘러나간 흔적이다. 80만년 전 지구의 시간을 품은 길을 따라 이색적인 제주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불모의 땅에서 생명의 보고로

제주도의 속살을 보고 싶다면 반드시 곶자왈에 가봐야 한다. 곶자왈은 ‘나무와 넝쿨 따위가 돌과 마구 엉클어져 있는 곳’을 일컫는 제주 방언이다.

곶자왈은 제주의 오름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흘러나온 용암이 지표면을 덮어 이뤄진 지형이다. 넓고 깊게 흐르던 용암은 수천년의 세월 동안 서서히 굳으면서 바위가 됐다. 바위틈 사이로 가시넝쿨만 자라는 땅이니 농사는커녕 인간의 손길조차 닿지 않은 불모의 땅으로 오랜 세월을 견뎠다. 넝쿨만 자라던 땅에 조금씩 새로운 생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숲은 그때부터 치열한 전쟁을 시작했다. 양지식물은 양지식물대로, 음지식물은 음지식물대로 생존을 위해 넝쿨을 만들어 양지식물에 기생하거나 햇살을 가려 음지식물이 자라는 터전을 좁혀나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한데 공존하는 것은 식물끼리 맺은 평화협정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구좌~성산 등 모두 네 군데 분포

숲에서 벌어진 전쟁은 결과적으로 인간을 이롭게 했다. 지하수를 머금은 숨골로 식물이 자라고 식물은 산소를 내뿜어 제주를 청정하게 만드는 ‘허파’가 됐다. 제주의 곶자왈은 구좌~성산, 안덕~한경, 애월, 조천~함덕 등 제주 동서남북의 네 군데에 걸쳐 고루 분포돼 있다.

곶자왈 특유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화순 곶자왈을 가보는 것이 좋다. 개가시나무를 비롯해 새우난, 더부살이고사리와 직박구리, 노루 등 50여종의 동식물이 원시 생명의 숲을 마음껏 누비고 있다. 곶자왈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라면 해설사와 함께 숲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한경면에 있는 ‘환상숲’이 좋다.

숲 해설사 따라 곶자왈 탐방도 인기

숲은 諮鄂構?햇살은 나무에 부서져 사각거린다. 천연 원시림이 햇살을 막아주기 때문에 숲에만 들어가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지영 숲 해설사는 “곶자왈은 제주의 천연 원시림으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지역”이라며 “제주산 양치식물을 비롯해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삼광조 팔색조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보금자리”라고 말했다.

곶자왈을 탐방하는 1시간 동안 수풀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떠나지 않았다.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千里香)의 냄새다. 잠결에 향기를 따라갔더니 이 꽃이 피어 있었다고 해서 수향(睡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꽃 내음을 찾아 숲을 돌다보니 어느새 탐방이 끝났다.

종을 닮은 산방산

흔하면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산방산이 딱 그렇다. 제주 해안도로를 타고 중문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어디서도 산방산이 보인다. 산방산은 마치 ‘어린왕자’에 나오는 보아뱀 형상 같다. 제주 사람들에게 산방산은 신비한 기운을 지닌 산으로 인식됐다. 산방산은 종(鐘)처럼 생긴 종상화산(鐘狀火山)이다. 산방산 중턱에는 큰 굴이 있다. 굴 천장에서는 사시사철 항상 일정한 양의 물이 떨어지는데 이 동굴에는 산방덕이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고 한다.

산방덕이는 산방산의 여신으로 인간세계가 궁금해 내려왔다가 화순리에 사는 고성목이라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고성목의 집안은 산방덕이가 들어오면서 큰 부자가 됐다. 그 마을에 마음씨 고약한 사또가 산방덕이의 미모에 반해 고성목을 괴롭혔고 결국 누명을 씌워 죽여버렸다. 산방덕이는 인간 세계에 나온 것을 후회하며 산방산 굴로 숨어버렸다. 동?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은 산방덕이가 자신의 불행과 인간 세계의 죄악을 슬퍼하며 흘리는 눈물이라는 것이다.

산방산은 산방산대로 멋이 있지만 그 아래로 이어진 용머리 해안도 제주에서 손꼽히는 명승지 중 하나다. 특히 산방굴에서 내려다보는 용머리 해안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유배온 문인들이 바위 곳곳에 풍광을 예찬하는 시구를 새겨놓았을 정도다.

용이 흘린 피가 스며들어 생긴 용머리 해변

용머리 해변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하멜상선전시관이다.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은 165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 제주도 용머리 해안에서 구조됐다. 하멜은 조선에 억류돼 있었던 13년의 기록을 ‘하멜표류기’라는 책으로 남겼다.

하멜상선전시관 아래는 사계리 용머리 해안이 이어진다. 용머리 해안은 해안선을 이루는 절벽 모양이 마치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산방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해안이 마치 거대한 용의 모습을 한 것처럼 보인다.

인근 해안이 대개 검은빛인 것과 달리 용머리 주변은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이는 용이 흘린 피가 스며들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좁은 통로를 따라 바닷가에 내려서면 오랜 세월에 걸쳐 층층이 쌓인 사암층 암벽이 보이는데 화산의 용암층이 바다로 이동하면서 생성된 것이다. 암벽에 부딪히는 파도는 흰살생선의 비늘처럼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용머?동쪽 해안에는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고 채취하기 위한 막이 있다. ‘소금막’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염전의 용도를 다했지만 관광객이 사진촬영을 위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군대 막사처럼 생긴 독특한 전망대

360개가 넘는 제주의 오름은 대개 걸어서 올라가야 하지만 군산오름은 정상 바로 밑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오름 자체가 가진 멋은 별로 없지만 군산오름에 꼭 가봐야 하는 이유는 서귀포의 탁 트인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산오름은 고려 목종 7년인 1007년께 화산이 폭발해 생긴 기생화산이다. 원래 이름은 ‘굴메오름’인데 오름의 생김새가 군대 막사와 같다 하여 군막(軍幕)이라 했고 제주 방언으로 ‘굴메’로 불리게 됐다.

오름 정상에서는 중문관광단지는 물론 대평리와 마라도, 산방산 등 서귀포의 주요한 관광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군산오름은 특히 해질 무렵이 아름답다. 해가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주황색이 됐다가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주황색이 풀어지면서 마침내 선연한 붉은 빛으로 변한다. 붉은 기운 아래 놓인 서귀포의 모습은 마치 붉은색 렌즈로 바라보는 것처럼 오묘하다. 그 아래로 바다는 여전히 포말을 날리며 뒤척거린다.

목공예 체험하고 보말 파스타 먹고

환상숲(010-6617-2488)에서는 숲해설사와 함께 곶자왈을 탐방할 수 있다. 목공예, 화분심기 체험과 석부작 작품도 만들 수 있다. 입장료는 5000원. 목공예 체험은 5000원, 석부작 체험은 2만5000원이다.

지질체험 중인 관광객이라면 지오하오스(Geo-House)에 묵어보자. 지오하우스는 관광객들이 숙소에서 지질의 특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지질테마 숙소다. 용머리해안 근처에 있는 ‘글라라의 집’(064-900-8222)은 용머리해안과 산방산 형제 섬의 스토리를 관광객들에게 전달해주는 매력적인 숙소다.

갈치조림을 먹고 싶다면 모슬포항에 있는 덕승식당(064-794-0177)이 좋다. 르씨엘비(064-712-1427)는 제주의 식재료로 만든 프랑스 요리를 잘 만든다. 감태로 감싼 보말파스타(사진)가 특히 맛있다.

서귀포=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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